A는 결혼을 썩 잘한 여자다. 그녀의 남편은 결혼만 해주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며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거의 지키고 사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그는 우선 사회생활에 별 뜻이 없는 그녀가 결혼하자마자 살림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녀가 아이를 낳은 후에는 틈틈이 집안일을 돕는 것은 물론 가사도우미까지 붙여주었다.

 

 

아내를 가보처럼 떠받드는 남편을 둔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녀 자신도 자기 행복에 자부심이 있었다. 여자는 그저 남편한테 사랑받는 게 제일이더라고 후배들에게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놀던 남편이 우연히 아이 입속을 들여다보더니 아무래도 충치가 있는것 같다고 하며 치과에 데려갔다. 아이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젖병을 물고 잠드는 습관때문에 생긴 치아우식증이라는데, 의사는 수면마취까지 하고 대대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치료 일정을 잡고 아이를 안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평소와 달리 말이 없었다. A는 어색한 침묵을 깨고자 생각 없이 한마디 했다.

 

“애가 꼭 젖병을 물려야만 잠이 들더라고. 그게 그렇게까지 나쁠 줄은 몰랐어.”
그러자 남편이 그녀에게 차갑게 말했다.
“네가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 집안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애 하나 보면서 그것조차 제대로 못해?”
그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자신도 나름대로 힘들게 육아와 가사를 하고 있으며 남편도 그 수고를 충분히 알아주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의 이가 그렇게된 것에 말할 수 없이 죄책감을 느끼던 차였다.

 

게다가 남편이 그런 식으로 말할 사람이라고 는 생각조차 못했기에 충격받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자신을 하는 일 없이놀고먹는 기생충 으로 여긴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전처럼 행복할 수 없었다.

 

남편은 치과에 다녀온 후 우울해하는 그녀를 향해 ‘적반하장’이라며 어이없어할 뿐이었다. 결혼은 분명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만드는 가정은 엄연한 ‘조직’이다. 조직 내에서는 그 조직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제 몫을 잘 해내지 못하는 구성원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애교 부리고 사랑받는 것만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 건 애완동물뿐이다. 애완동물은 가족에게 사랑받기는 하지만 집안 돌아가는 일에 의견을 낼 수 없다.

 

때때로 손님이 오면 방에 갇히기도 한다. 심지어 주인의 애정이 식으면 길거리에 버려지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결혼해서 남편 사랑 하나에만 의지해 살아간다면 그의 애완동물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마찬가지다. 사랑 하나로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건 연애 때뿐이고, 그것이 연애가 영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하고 사랑받되 남편과 다른 가족에게 당당히 조직원으로 인정받고 대접받고 싶다면 직장에 들어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인 ‘취집’은 ‘취직 대신 결혼’이 아니라 ‘결혼에 취직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옳다.


직장에서는 누구나 자기가 조직에 기여하는 한 부분을 맡고 그것에 책임진다. 아무리 신입 말단이어도 범위만 다를 뿐 자신이 책임져야 할 영역이 있다.

 

마찬가지로 결혼으로 맺어진 조직에 들어가서도 재빨리 자신의 역할을 포지셔닝하고 그 영역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 책임져야 한다. 앞 이야기 속의 A가 남편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은 따지고 보면 포지셔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은 분명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될 말을 했지만, 같은 상황에서 어떤 남자라도 마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재테크와 지출 관리에 능한 가계 경영형 주부가 되든, 육아와 내조에 힘쓰는 매니저형 주부가 되든, 전문 수준으로 요리와 가사를 해내는 살림형 주부가 되든 자신의 일을 특화시켜야 한다.

 

어떤 부분에서도 뚜렷하게 성과를 보이지 못할 때 남편 눈에는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걸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A는 억울하다. 결혼만 해주면 세상을 다 주겠다며 조를 때는 언제고, 나름대로 가사와 육아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는 자신을 백수 취급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당신이 마음에 들어 스카우트했다고 해서, “당신들이 좋아서 날 데려왔으니 내가 성과를 못 내더라도 다 받아줘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올려 받은 연봉 값을 하려고 더 열심히 일하지 않겠는가? 가정도 다르지 않다. 남편이 당신을 더 사랑해서 결혼했거나, 혹은 당신이 정 때문에 조건이 기우는 결혼을 마지못해 했어도 당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글 남인숙
베스트셀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인생을 바꾸는 결혼 수업>을 출간하여 ‘여자들의 멘토’로 각광받고 있는 남인숙 작가가 결혼을 앞둔 여자들이 알고 준비해야 할 ‘결혼의 진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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