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대로도 아름답다
당신은 그대로도 아름답다
  • 한혜리
  • 승인 2018.08.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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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일까, 나를 바라보는 타인일까. 자기만족이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또다시 남의 기준에 져버린 ‘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진짜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

 

 

거울을 보자. 그리고 거울에 보이는 모습을 말해보자. 얼굴은 어떻게 생겼고, 체형은 어떻고. 거울에 보이는 ‘나’에 대해서 아낌없이 말해보자. 당신이 말한 ‘나’는 어떤 모습인가.

 

또한 당신이 말한 ‘나’의 모습에 만족하는가. 아마도 거울을 바라보는 눈은 그 누구보다 엄격하고 모질게 ‘나’의 단점을 찾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TV를 켜보자. TV에 나오는 여성 연예인의 모습에 대해 말해보자. 얼굴은 어떻게 생겼고, 체형은 어떻고. 보이는 것에 대해서 아낌없이 말해보자. 당신이 말한 ‘그’는 어떤 모습인가.

 

또한 그의 모습에 만족하는가. 아마도 TV를 바라보는 눈은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동경이 깃든 부러움과 또다시 엄격한 심판자의 눈. 그렇다면 왜? 왜 우리는 보이는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이러한 불만족과 심판은 일상에까지 이어진다.

 

남을 보며 쉽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보고는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당신이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나’와 다를 뿐. 이괴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다시 TV로 돌아가 보자. 미디어는 지속적으로 규정화된 모습의 여성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자면, 44사이즈의 마른 여성,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풀메이크업을 유지하는 여성, 눈이 크고 얼굴이 갸름한 여성. 미디어는 이러한 여성을 아름답다 칭송하고, 그렇지 않은 여성을 깎아내린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절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하나의 특징일 뿐. 생김새의 묘사일 뿐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보이는 대상이나 음양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것을 ‘아름다움’이라 한다.

 

그 어디에도 ‘44사이즈의 풀메이크업 여성’이라는 말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모습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미디어를 통한 학습 효과다. 반복적으로 ‘44사이즈의 풀메이크업 여성’을 아름답다는 키워드에 부합해 시청자에게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아름답다’는 주관적인 느낌을 미디어로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학습된 시청자들은 일관된 아름다움으로 기준을 삼고 그에 따라 판단한다.

 

자신의 외모와 혹은 타인의 외모까지. 이러한 과정으로 ‘나’는 엄격한 심판자의 눈을 갖게 된다. 외모에 대한 잣대는 유독 여성에게 더욱 엄격하게 작용한다.

 

얼마 전 커플이 출연한 한 예능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남성 출연자는 편한 티셔츠를, 여성 출연자는 미니드레스에 가까운 드레스 업을 하고 나왔다.

 

생각해보니 미디어에서 남성은 외모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보다 그가 가진 능력, 행동, 사고 등에 초점을 맞춘다. 예능인은 살이 찌건 말건 웃기면 되고, 가수는 안경을 끼건 말건 노래만 잘 부르면 된다.

 

외적인 면보다 그의 본질에 집중해야 하는데, 여성 연예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여자 아이돌 중 안경을 낀 가수는 절대 없으며, 살이 찐 여성 예능인에게는 몸매를 희화화하며 불편한 웃음을 유발한다.

 

심하게는 드라마 속에서 폭행을 당할 때도 예뻐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유를 시청자에 대한 예우라고 둘러댄다. 가다듬은 용모가 ‘예의’에 속하는 건 여성에게만 한정되는 것이다. 이런 미디어의 모습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20대 중반, 한창 취업 면접을 보러 다닐 때 한 중소기업에 서류합격이 되어 면접을 보러 갔다. 회사 ‘대표자’와 만나는 일대일 면접이었다.

 

면접자인 나는 아침 일찍부터 공들여서 메이크업을 하고, 헤어를 매만지고, 단정한 세미 슈트를 차려입었다. 회사 입구에서까지 옷매무새를 점검한 내가 마주한 ‘대표자’는 SPA 브랜드의 양털 집업 재킷을 입고 있었다.

 

순간, 회사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거울을 본 내가 허무해지는 기분이었다. 면접자인 나는 예뻐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예의’를 차리고 싶었다.

 

TV에서 본 면접자들처럼 단정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기에 메이크업을 하고 슈트를 차려입었다. TV에서 맨 얼굴은 성의 없다고 무시당할 수 있으며, 부끄러워해야 할 태도라고 말했으니까. 결국 미디어가 만들어낸 외모에 한정된 ‘아름다움’은 시각을 넘어 생활 전반까지 침투해 여성의 일상을 압박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드러나고 있다. ‘탈 코르셋(미디어가 만들어낸 외모적 기준의 압박을 보정 속옷인 코르셋에 비유, 코르셋을 탈피하자는 의미)’, ‘파데프리(화장품 파운데이션과 자유를 뜻하는 프리(free)의 합성어로, 화장하지 않고 본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의미)’ 같은 운동이 붐이 일면서, 그동안 여성을 옥죄던 ‘미디어의 기준’에서 벗어나려는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

 

이는 여성이 가꿔진 모습이 아닌, 나 그대로의 본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자 사회적 코르셋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남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것.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사랑할 줄 아는 것. 진짜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는 과정인 것이다. 인간은 누군가의 눈을 즐겁게 하려는 전리품이 아니고, 전리품이 될 수도 없는 존재이다.

 

주체 의지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자기만족에서 비롯해야 한다. 따라서 당신은 ‘그대로도’ 아름답다! 눈이 크건 작건, 44사이즈건 66사이즈건, 그건 단순한 ‘차이’일 뿐이지 절대 남에게 뒤처지는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연의 모습을 사랑하자. 나 자신에게 집중하자.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고치지 않아도, 맨 얼굴을 내보여도 우리는 모두 아름다우니까. 다시 한 번 거울을 바라보자. 사랑스러운 두 눈이 누구보다 아름다운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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