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흡사 잔칫날 같은 예식에서 고요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주례 시간. 이때만큼은 모든 하객이 귀 기울이며 사랑의 서약에 맹세하는 신랑과 신부를 바라본다. 하지만 감동과 불쾌는 한 끗 차이인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어떤 주례는 하객의 감동적인 눈물을 뽑아내고, 어떤 주례는 하객의 찌푸린 인상을 이끌어낸다. 분명 주례는 신랑신부의 축복을 위하는 말이건만, 왜 주례를 듣는 하객의 감정은 하나이지 않은 걸까.
▷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아마 결혼식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주례 문구가 아닐까. 개그의 콩트 멘트로 사용될 만큼 식상함을 넘어서 진부해져 버린 멘트.
단어만 들어도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이 구절이 식장에서 울려 퍼진다면 아마 반응은 두 가지일 것이다.
웃음이 터지거나, 하품이 나오거나. 노란 머리도 있고, 갈색 머리도 있고, 심지어 파란 빛 머리도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를 들어야 할까.
▷ 여자는 순종적이어야 하며...
얼마 전 들은 주례사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 있었다. 내용은 ‘여성은 남편에게 순종적이어야 하며, 남편을 하늘같이 섬기고 집안 살림을 돌봐야 한다’였다.
이게 무슨 시대착오적 발언인가 하고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하객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주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 시대 여성상을 읊었고, 그날의 주례는 대다수 하객에게 ‘최악의 주례’로 남았다. 심지어 신부까지 불쾌함을 느꼈을 정도니. 지금은 조선 시대가 아닌데 말이다.
▷ 애틋함을 담은 아버지의 한 마디.
최악이 있으면 최고도 있는 법. 보통 주례는 신랑신부의 은사나 정신적 지주로 삼을 만한 어른이 맡기 마련이다.
그 중엔 우리의 ‘아버지’도 있다. 아버지의 주례라, 쑥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어느 주례보다 진정성이 가득하다.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신랑신부의 행복한 앞날을 빌어주니 말이다.
그간 쑥스럽다는 이유로 숨겼던 애틋한 마음은 고스란히 주례에 담기고, 그 진정한 마음은 하객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 모두를 웃게 만드는 센스.
주례가 꼭 진중하고 무거울 필요는 없다. 예식의 예절을 망치지 않는 선에서 얼마든지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유쾌한 주례사를 얘기할 수 있다.
유쾌한 주례가 없어도 이미 행복이 가득한 결혼식이지만, 신랑신부의 감동적인 눈물까지는 아무도 막지 못한다.
그럴 때, 분위기를 환기하는 센스있는 주례사가 읊어진다면, 신랑신부도 고운 얼굴로 웃으며 식을 마칠 수 있지 않을까. 웃음은 해피 바이러스라고 하니까.
▷ 주례 없는 부부를 위한 특별한 혼인서약문
우리 두 사람은 오늘부로 하나가 되어 다시 출발하려 합니다.
뜻깊은 날 와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며, 여러분들 앞에서 저희의 혼인을 맹세하려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앞으로 변하지 않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할 것입니다.
함께하는 시간을 소홀히 여기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불어와도 서로 마주 잡은 두 손 놓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내 곁에 있는 당신을 늘 감사히 여기며 존중하고, 항상 당신 편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숨 쉬는 모든 순간을 사랑할 것이며, 생이 다할 때까지 붙잡은 두 손을 놓지 않을 겁니다.
매 순간을 사랑하며 살며,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저희의 사랑을 맹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