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뭐 특별한 일 없어?” 바쁜 걸음으로 학교에 도착한 나를 보자마자 아이가 묻는다.

홍대 한복판에 사는, 더구나 외동인 아이의 눈에 세상은 화려한 이벤트의 연속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학교를 다니고, 가방을 정리하고, 숙제를 하고, 씻고, 청소하는 일 같은 무료하고 반복적인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알려준다.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쾌락이 많은 사회에서 행복하지 않은 기분, 즐겁지 않은 기분, 지루하고 무료한 기분이 들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곤 한다.

항상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은 우울한 정서를 낳는다. 그렇게 우울과 쾌락 사이를 오가는 동안 정작 일상은 빈약해진다.

남편을 만났을 때 나는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반찬을 만들어 밥을 차리고,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빨래한 수건을 옥상에 들고 올라가 볕에 널고, 옷을 얇게 입은 날이나 구두를 신은 날에는 내 옷가지와 신발까지 따로 챙겼다.

무엇보다 이 사람은 내 손바닥 위에 자기 마음을 통째로 올려주었다. 그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직업적인 면에서도 자기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성실하게 이력을 쌓아온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기준과는 조금 다른 기준이긴 했으나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조건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남자를 만났고 내 안목에 감탄했으며 우리 커플을 낙관했다. 노인이 되어서까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니는 세기의 커플이 될 것이라 믿으며 그와 결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내 행복 그래프가 널을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갈등이 이어졌다. 상황을 풀어보려 이런저런 시도를 했지만 그럴수록 더 아득해졌다.

물에 잠긴 사람들처럼 우리의 소리는 서로에게 도달하지 않았다. 결혼식 때 무슨 일이 있든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을 그때 우린 예상했을까.

얼어붙은 남북 관계처럼 협상은 결렬의 연속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거울 속에 비친 이 불행한 여자는 누구인가. 더 늦기 전에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우리는 10년 차 부부가 되었다.

가을의 문을 두드리는 비가 내리던 지난 9월, 길을 걷던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나는 남편과 내가 소수의 성공한 커플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아. 근데 이제 인정하기로 했어. 우리는 행복한 그 소수의 커플이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있거나 실패한 결혼도 아니야. 그리고 이 정도도 괜찮다고 생각해.”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온전히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행복이라는 강박을 놓아버리자 긴장이 풀리며 내 속에 무언가 새로운 지형이 생겨났다. 집에 돌아와 친구에게 한 말을 남편에게 똑같이 들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지금 아주 어려운 시간을 이미 다 통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는 10주년 기념으로 커플 시계를 샀다. 크기도 색깔도 디자인도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디자이너가 만든 시계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 일상적인 시간 동안 그 우리가 독자적으로 때로는 함께 어우러져 어떤 친숙하고 편안한 리듬을 만들어내길 그리고 우리가 그 리듬에 맞춰 조금씩 콧노래를 부를 수 있길 바라본다.

그 흥얼거림 속에 어쩌면 진짜 행복이 있을 것이다.

▷ 글 박소현. 책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의 저자. 출판사에 다니다가 결혼과 출산 뒤 프리랜서출판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결혼 선배다. 진짜 행복을 찾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다가 이제야 감을 잡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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