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십개월의 미래'를 통해보는 화두, '혼전임신'
영화 '십개월의 미래'를 통해보는 화두, '혼전임신'
  • 한혜리 기자
  • 승인 2021.11.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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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혼돈을 뜻하는 ‘카오스(Chaos)’라는 말을 예기치 않게 찾아온 태아의 태명으로 정한다.

그때부터였을까, 미래(최성은)의 일상이 혼돈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한 게. 윤호(서영주)에게 세상을 바꾸자던 미래의 세상은 한순간에 뒤집혔다.

세상엔 지문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단 한 명도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결혼, 그리고 가족도 그렇다. 같은 결혼 생활도 없고, 같은 가족도 없다.

모두 제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사람들. 보편성의 시선을 깨고, 결혼이라는 참된 의미 아래 묶인 가족을 바라본다.

▶ 영화 <십개월의 미래>

영화 <십개월의 미래>는 미장센단편영화제 최우수상 출신 남궁선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제16회 파리한국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지난 10월 14일, 한국에 정식 개봉해 ‘임신’을 소재로 한국 사회 속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세대에게 ‘임신이란 과연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 눈길을 끈다. 

<십개월의 미래>는 스물아홉 살, 프로그램 개발자인 주인공 미래가 예기치 못한 혼전임신으로 겪는 온갖 변수를 담아낸다.

고지식한 본가에서 벗어나 꿈을 위해 자유롭게 날아가려는 미래에게 예고 없이 찾아온 임신은 혼돈을 안겨준다.

부정과 인정의 과정을 거쳐 남자친구 윤호와 결혼을 약속하며 정상 가족 궤도에 오르려 하지만, 어쩐지 미래는 점점 자신을 잃어버리는 듯하다. 결말에 이르면 어쩐지 무릎을 치며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토록 사실적인 임신 이야기라니. 

남궁선 감독은 본인의 임신 경험을 계기로 <십개월의 미래>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대중 매체에 임신부가 등장하는 일은 많지만, 그들이 주체가 되는 ‘보통의 여성이 겪는 보통의 임신담’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남궁선 감독이 가장 주목한 포인트는 ‘경험의 크기와 보편성에 비해 그 과정을 대중문화에서 온전히 주인공으로 본 적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남궁선은 정공법을 택했다. 아주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임신부의 현실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는 이야기들을 무겁지 않되 진지하게 꺼내놓는다.

▶ ‘혼전임신’, 그리고 ‘임신’에 대한 시선

얼마 전 TV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여성 유튜버는 혼전임신을 고백한 이후 악성 댓글이 심해졌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원색적이고 악의적인 댓글로 인해 본업인 유튜버 활동도 이어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생계의 위협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녀와 부모님, 아이들까지 위협한다는 악성 댓글들.

악성 댓글의 내용은 주로 혼전임신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혼전임신을 색안경 끼고 본다는 것이다. 

이런 색안경은 ‘혼전순결’에 대한 이데올로기에서 비롯했다고 할 수 있다. 동반자법이 다양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제도는 혼인신고 뿐이다.

혼인신고는 결혼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결혼에 관련된 의식과 관례들까지 포함하는데 여기엔 낡고 낡은 ‘혼전순결’이라는 개인적 신념까지 포함된다.

정상 궤도를 벗어난 일은 다른 시선을 받는다. 정상 가족의 형태를 이루는 결혼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해서, 더 나아가 결혼 전 순결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전임신’은 유난히 비난의 시선을 받는다.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오히려 책임을 지기 위해 가정을 꾸린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혼전임신에 대한 시선은 생각보다 더욱 날카롭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정상 루트’로 임신을 한 사람들에게 관대한 것도 아니다. 축하 메시지는 쏟아질지언정 임신부에 대한 배려는 굉장히 협소하다. 대중교통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부터 직장에서 소외되는 것까지.

신체적 변화의 이유로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 제약을 받는다. <십개월의 미래>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미래와 중학생의 대화로 담아냈다. 

임신으로 직장을 잃은 미래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전전한다. 그러나 같은 ‘문제’로 낙방하고, 좌절한다.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며 벤치에 앉아있던 미래에게 남자 중학생이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돼지, 아줌마 배 돼지 같다고요.” 이는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 아닐까.

▶ 결국, 임신은 혼자의 문제일까

미래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작은 스타트업에 다니며 자신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미래에게 자신의 목표와 꿈은 삶의 가장 큰 매개체이자 자신을 존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을 터. 그런 미래에게 중국 상해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큰 기회가 주어지지만,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망설일 수밖에 없다.

미래는 미래를 약속한 남자친구 윤호에게 상해에서 가정을 꾸리자고 넌지시 제안한다. 윤호는 확고한 거절 의사를 밝히며 “네 일이 중요하듯 내 일도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그러면서 미래에게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몇 달 전과 똑같은 나인데, 모두 나를 다르게 대해.” (미래)

임신을 하자 미래에게 강요되는 건 ‘엄마로서의 역할’과 ‘모성에 대한 책임감’이다. 육아 노트를 손에 쥐어주는 산부인과 의사부터, 엄마로서 삶의 계획을 세우라는 윤호, 그리고 윤호의 가족까지.

옆에서 ‘도와주겠다’고 말만 할 뿐, 모두 미래가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처음 겪는 일에, 그것도 예상치 못한 일에 미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임신으로 일어나는 신체의 변화, 그리고 환경의 변화, 심적 변화는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능숙하게 터득해야 할 뿐. 그야말로 ‘카오스’다. 

이는 미래가 태동을 처음 겪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뱃속 느낌이 이상하여 병원을 찾은 미래는 곧 태동이라는 걸 알게 된다.

뱃속의 느낌도 이질적이고, 임신 이후의 모든 상황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미래는 산부인과 의사 옹중(백현진)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그동안 미래의 모든 질문에 답변을 피하던 옹중은 이때 한마디 해답을 내놓는다. “모두가 혼란스러워합니다.”

영화에서 알 수 있는 건, 임신 이후 여성이 감내해야 할 건 신체적 변화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를 대하는 주변의 환경, 그에 따른 심리적 변화까지 동반한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을 통해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조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겪어봐야 알 수 있다. 오히려 미디어는 이러한 실질적 변화를 가리고 좋은 것만 보여주려 미화한다. 마치 임신의 이면인 것처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변화를 맞게 되는 임신부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때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 가장 큰 법인데, 이마저 한국 사회에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며느리와 아내의 이름으로 또 다른 역할분담이 주어질 뿐. 마치 윤호의 집에서 미래가 예비 시어머니에게 ‘앞치마’를 선물 받은 것처럼 말이다.

▷ “지우지 못한 결과로 너와 내가 지워지고 있잖아.” (미래)

임신을 한 이후부터 미래의 이름은 서서히 지워진다. ‘OO(태명) 엄마’로 불리기 시작하여 모든 일상이 OO으로 점철된다.

이는 출산 후 육아로 이어지면서 계속된다. 자신의 이름을 평생 되찾지 못하기도 한다. 이 모든 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인식에 면밀히 얽혀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임신부를 위한 제도 마련에 세심한 배려와 시선이 필요한데 여전히 <십개월의 미래>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걸로 봐선, 한참이나 부족한 현실이다. 

<십개월의 미래>는 희극도 비극도 아닌 결말을 맞는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이후 겪는 일상과도 같다.

아이라는 소중한 존재가 생기는 기쁨과 동시에 현실적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 영화의 결말은 철저히 현실을 고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다고 저출산이 고출산 되나요!”라는 미래의 외침처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임신부가 보이지 않는 소외를 당하지 않기 위해선 혼전임신, 그리고 임신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정확히 직면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직면이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측면의 배려로 이어진다면 예기치 못한 ‘카오스’에도 덜 흔들리는 미래가 되지 않을까.

▶ DIRECTOR’S NOTE BY 남궁선

▷ “이런 작품을 만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2014년 당시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매체 속 임신한 여성은 두 가지로 나뉘는 듯 보였다. 아이를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 전자는 ‘모성을 향한 고난의 여정’이고 후자는 ‘중절을 향한 고난의 여정’이었다.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감독으로서 이 부분이 신경 쓰였고, 진짜 사람, 모순적이고 복잡한 사람들이 겪어나가는 임신이라는 경험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5년부터 기획을 시작했고 2018년에 촬영에 들어가 2020년에 완성했다. 일종의 의무감으로 시작한 영화인데 제작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보통 여성의 보통 임신담은 모두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고 넘어가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사이 여성 서사가 늘고, 전 세계적으로도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여러 경험과 감정에 관한 영화가 화두로 떠오르며 해외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게 되어 기쁘다.

▷ “보통 여성의 보통 임신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관객이 ‘미래’ 입장에서 이 사건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특히 인물을 어떤 가치로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저 동행하는 느낌이기를 바랐다.

시나리오를 읽은 주변 반응이 다 달랐는데, ‘그냥 낳으면 될 거 같은데 왜 고민을 하는지 모르겠다’와 ‘아이를 지우지 않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불편하다’는 극과 극의 의견이 공존했다.

임신을 한 당사자의 감정은 이런 외부의 단순한 시선과는 달리 복잡하고 갈팡질팡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 “자전적 영화는 아니어야 했다”

임신 경험으로 시작된 영화지만 자전적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나와 ‘미래’의 세계를 분리해야 관객이 미래의 여정에 쉽게 다가서도록 설계할 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작은 일화들 안에 내가 겪었거나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경험담이 소소하게 반영되어 있다.

미래가 주차장에서 튀어나온 배 때문에 차를 타지 못해 난감해하는 장면, 산전 요가 교실에서 수강생들이 태명을 부르는 문화를 낯설고 어색해하는 장면, 지나가는 학생에게서 돼지라는 말을 듣는 장면 등이다.

자주 방문하던 술집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장면도 자전적 요소가 있는 장면이다. 이전까지 속해 있던 풍경의 밖에서 겉도는 느낌. 원래 있었던 곳에서도, 새로이 가게 된 곳에서도 이방인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 “새로운 캐릭터의 구축”

스물아홉 살 프로그램 개발자인 ‘미래’는 낙천성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건데 왜 그걸 모르냐’는 대사에서 느껴지듯 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걸 갖고 있는 인물이다.

안정된 조직 생활에서 은퇴 후 ‘국민 자영업’ 치킨집을 차리는 부모 세대와 달리, 어차피 고용 안정성이 무너진 시대에 더 큰 가능성에 도박을 하듯 스타트업에 몸을 던지는 미래의 모습은 진심으로 자신은 부모와 다른 삶을 살 것이라 믿는 젊은 세대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미래’의 남자친구 ‘윤호’도 낙천적인 면이 있다. 일러스트 작업 아르바이트를 하며 선배의 사업을 돕는 인물인데,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길 꿈꾸지만 현실은 아버지가 제공한 보증금에 기댄 불완전한 독립 상태라는 딜레마로 불안하다.

여자친구의 임신 소식에 새로운 앞날에 대한 희망을 품지만 결국 가장 도망치고 싶었던 그곳으로 다시 끌려가게 되는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힙한 술집을 운영하는 ‘김김(유이든)’은 의외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다. 누구보다 ‘미래’를 잘 알고, 실질적인 조언을 건넬 수 있는 친구이다. 

‘미래’가 만나는 산부인과 의사는 처음부터 남자로 생각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수많은 산모들을 보아 왔지만 정작 자신은 그 경험을 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설정에서 오는 아이러니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 의사는 같은 여성으로서 좀 더 인간적인 조언을 해줄 수도 있지만 ‘옹중’은 투철한 직업의식과 선을 넘지 않는 진지한 성격으로 ‘미래’의 질문에 최대한 거짓 없는 대답을 해주려 노력한다.

▷ 엄마에게

일종의 청춘 성장담이 될 거라 생각하고 시작한 이야기가 여성 수난기처럼 풀렸다는 게 흥미롭다. 영화는 결국 진실을 향해 움직이는 면이 있는데, 이 영화를 작업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살았을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일이 많았다. 

1980년의 엄마는 ‘순진하게도’ 자신도 이미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세상이 또 이만큼 달라져 또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를 가진 여성에게는 예측하지 못했던 수많은 요구들이 딜레마처럼 닥친다는 점에서, 엄마 세대의 이야기가 온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 선택을 그린 영화가 아니다

‘임신을 한 여성의 십 개월’이라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이기에 결말에는 어떤 식으로든 ‘선택’이 있어야 했다. ‘출산’이거나 ‘중절’이거나. 감독으로서 처음부터 이 영화는 출산으로 가는 여정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미래’가 심사숙고한 자의적 ‘선택’이 아니라는 점도 보여주고 싶었다. 

‘생각을 하면 시간이 사라진다’라는 대사처럼 십 개월이라는 시간은 인물이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가차 없이 흘러간다. 모든 변수에 대응하는 논리를 설계하는 직업을 지닌 미래는 그 논리 체계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주변에 괜찮은 출산의 롤 모델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중절 또한 법적, 윤리적 짐을 안고 있는 선택지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떤 끝에 도착했을 뿐이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선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인지 고민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했다. 

한혜리 기자 news@wedding21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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