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지문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단 한 명도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결혼, 그리고 가족도 그렇다.

같은 결혼 생활도 없고, 같은 가족도 없다. 모두 제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사람들. 보편성의 시선을 깨고, 결혼이라는 참된 의미 아래 묶인 가족을 바라본다.

▶ <박강아름 결혼하다>, 잘 살 수 있을까요?

무언가 시원하고 통쾌하다. 그저 박강아름의 일상을 그대로 담았을 뿐인데, 눈에 밟히는 의미가 많다. 박강아름의 현실이 결혼의 현실을 완벽히 전복시켰기 때문일까, 영화를 보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일까?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박강아름이 남편을 데리고 프랑스로 떠나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다.

자전적 다큐멘터리 감독 박강아름과 진보정당 활동가이자 요리사인 남편 성만은 첫 번째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중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결혼 후 박강아름은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온 프랑스 유학행을 결정하고, 남편 성만과 함께 프랑스로 떠난다. 불어를 할 줄 아는 아름은 프랑스의 결혼 생활 안에서 행정과 경제를 맡고, 불어를 할 줄 모르는 성만은 가사와 육아를 맡았다.

그러던 와중 성만은 주부우울증에 걸리고, 아름은 학업과 영화 작업에 더욱 몰두한다. 감독 박강아름은 프랑스 결혼 생활 속 두 사람의 갈등과 일상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냈다.

영화를 더욱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다면, 일단 성만이 주부우울증에 걸린 이유부터 바라보면 될 것이다. 프랑스에 오게 된 건 순전히 아름의 유학을 위해서였다.

아름의 의지가 지배적이었고, 성만은 아름의 말처럼 “계획이 없”었다. 불어를 하지 못하는 성만은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프랑스에서 사회적인 활동보다 집안을 돌봤다. 자연스럽게 아름이 학업에 열중할 동안 성만은 ‘독박 살림’, ‘독박 육아’를 하게 된다. 어떠한 면에서 성만은 고립됐다.

이는 우리가 숱하게 봐왔던 한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성만이 남성이라는 것. 보편적 시선으로 성만은 아름을 내조(內助)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조의 사전적 의미에는 이러한 설명이 쓰여 있다.

‘특히 아내가 집 안에서 남편을 돕는 경우’. 집 안에서 바깥일을 하는 구성원을 돕는 일은 보통 아내인 여성이 해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만은 남성이고, 성만이 해왔던 일들은 보편적이지만, 성만이 남성인 사실은 보편적이지 않다.

남성이 바깥일을 하고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보편적 젠더 구조를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완전히 전복한다. 성만은 자기소개를 하라는 아름의 디렉션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이 집 식모예요, 밥 차려야 하는데.”, “이름이 뭐예요?”, “식모가 이름이 어디 있어요.” 이 또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가 아닌가. 왜, 어째서 이들은 ‘보편성’을 전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고립된 프랑스 이주 생활? 아름의 내재된 가부장 성향? 성만의 수용적 태도? 이 모든 특수성의 역할도 컸겠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아름과 성만은 시작부터 성 역할을 규범 짓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어를 할 줄 아는 아름이 자연스럽게 외부 활동을 하고, 요리를 잘하는 성만이 내부 활동을 했다. 성별을 떼고 본다면 ‘당연한’ 역할 분담이다.

이러한 삶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결혼 생활 속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닌 젠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색안경 같은 ‘보편성’만 아니라면 가정 속의 ‘보편적’ 역할은 경제권과 주도권을 통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결혼 생활 속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도 서슴지 않는다.

24시간 숙취처럼 미식거리는 임신 증상부터, 입덧으로 한 달 만에 15kg가 빠져버린 사실, 출산 후 맘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몸에 대한 사실까지.

임신과 출산에 대해 미디어에서 보여주던 아름다운 사실과는 정반대의 적나라한 사실을 얘기해준다. 이 또한 기혼 여성들의 큰 공감 포인트 중 하나다. 

“일도 사랑도 다 잘 해내고 싶었던 30대 여성의 좌충우돌 이야기로 보이길 바란다.”

박강아름의 말처럼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결혼 생활 속 여성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냈다. 기혼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결혼 생활의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여기에 성 역할 반전, 프랑스 타지살이라는 특수성이 더해졌을 뿐. 이로 인해 평범하지만 보편적이지 않은 결혼 생활이 담긴 필름은 미혼자에겐 재미를, 기혼자에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혹은 결혼 제도 속 ‘성 역할’에 신선한 의문을 던진다. 또한 새로운 삶의 다양성을 제시한다.

핵심은 이것이다. 현대의 결혼은 그 이름만으로도 제도적 의미가 강하다. 사랑하는 이들의 결합보다는 집안의 결합, 그리고 경제적 결합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크다. 지금 세대들이 ‘결혼’을 꺼려하는 이유다.

불리하고 기울어진 구조, 경제적 가치를 따질 수밖에 없는 과정. 현대의 결혼이 갖는 가장 큰 단점이다.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기울어진 구조의 방향을 전복하고, 불필요한 경제적 과정을 생략한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모습은 꽉 막힌 ‘보편성’을 깨부수는 동시에 다양성에 목소리를 더한다. 영화는 단순히 방향을 바꾸고 생략했을 뿐인데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제시된다. 즉, 영화는 결혼 생활의 숨겨진 진리를 깨닫게 만드는 동시에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지금 30대가 되거나, 30대가 되려는 여성들에게 이 영화를 바치고 싶다.”

가족 형태의 다양함으로 확장된 시선은 관객의 범위를 넓힌다. 결혼 생활 이야기이지만 관객을 기혼만으로 한정 짓지 않는 것.

그야말로 비혼, 기혼, 미혼, 이혼의 경험을 가진 모든 관객, 더 나아가 여성, 남성까지 지금 이 시대에 사는 모든 이에게 결혼의 의미, 결혼의 진실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것이 바로 결혼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웨딩21> 역시 결혼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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