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제77주년 광복절 계기 안창호 선생 장녀 ‘안수산 선생’ 등 303명 독립유공자 포상
국가보훈처, 제77주년 광복절 계기 안창호 선생 장녀 ‘안수산 선생’ 등 303명 독립유공자 포상
  • 최해영 기자
  • 승인 2022.08.1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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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산 선생, 윤도중 선생, 현학표 선생 등 303명 독립유공자로 포상... 건국훈장 79명, 건국포장 24명, 대통령표창 200명

* 1949년 최초 포상 후 총 17,588명(여성 597명) 포상(건국훈장 11,669명, 건국포장 1,495명, 대통령표창 4,424명)

▶ 안수산 선생, 안창호(아버지)·이혜련(어머니)·안필립(오빠) 선생에 이어 포상

▶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독립유공자 발굴·포상 사각지대 해소는 물론, 보다 다양한 독립운동 사례 발굴에 최선 다할 것”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193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하며 언론을 통해 조국의 절대독립 의지를 선전한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 선생이 독립유공자(대통령표창)로 포상된다.

안창호 선생과 이혜련 여사, 안필립 선생에 이어 안수산 선생까지 포상을 받음에 따라, 2대에 걸친 명실상부한 독립운동 명문가 가문임을 입증했다.

* 안수산 선생 가족(2대가 독립유공자) : 아버지 안창호 선생(1962년, 대한민국장), 어머니 이혜련 여사(2008년, 애족장), 오빠 안필립 선생(2021년, 대통령표창)

또한, 1931년 경기 인천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와 연계해 군자금 모집과 연락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7년을 받은 윤도중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는 등 이번 광복절을 계기로 모두 303명에 대한 포상이 이뤄진다.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14일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 선생과 윤도중 선생 등 일제에 굴하지 않고 조국독립을 위해 희생·헌신한 총 303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79명(애국장 19, 애족장 60), 건국포장 24명, 대통령표창 200명으로, 포상자 중 생존 애국지사는 없고, 여성은 30명이다.

건국훈장․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77주년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된다.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최초 포상 이래 이번 광복절까지 독립유공자 포상자는 총 17,588명으로, 건국훈장 11,669명, 건국포장 1,495명, 대통령표창 4,424명이며, 이 중 여성은 597명에 이른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올해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늦었지만, 이제라도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포상하고 그 공훈을 기릴 수 있게 되어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도 국가보훈처는 유관기관과 독립운동 사료수집 협업 체계를 공고히 하고, 국내외 소장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독립유공자 발굴·포상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은 물론, 보다 다양한 독립운동 사례를 발굴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에 포상될 주요 인물의 독립운동 공적은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절대독립 의식을 선전한 안수산(女) 선생(대통령표창)

미국에서 언론을 통해 절대독립 의지를 선전한 안수산 선생에게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로, 193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한인국민회 나성청년부에서 활동하고 1940년 대한인국민회 기관지인 신한민보 영문란을 통해 한국광복군의 성립 등을 기사화해 절대독립 의식을 고취하였다. 

선생은 1942년 미국 해군에 자진 지원하여 해군사관양성소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해군에 복무 중에도 한국사정을 소개하며 독립선전사업에도 매진하였다.

아버지 안창호 선생(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어머니 이혜련 여사(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 오빠 안필립(2021년 대통령표창) 등 2대에 걸친 독립유공자 집안이다.

♥ 상소투쟁에서 의열투쟁으로 식민지화를 반대한 현학표 선생(애국장)

서울에서 일제 침략에 반대하는 통문에 서명하고 매국노 등을 처단하려 한 현학표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05년 서울에서 일제 침략에 반대하는 유회소의 통문에 서명하고 매국노 이지용 등을 처단하려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을 받았다. 옥고를 치른 이후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국권회복을 모색하였다.

1905년 9월 대한13도 유회소 유생대표 26명 등과 일제의 군사적 침략을 반대하는 통문을 전국과 각국 공관에 보내는 한편 일제와  협잡한 고관의 직접 처단을 목적으로 한 의열투쟁에 참여하였다.

특히 외부대신서리 이지용은 1904년 2월 일제의 군사적 침략을 허용한 ‘한일의정서’와 1905년 11월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을 조인한 매국노였다. 

♥ 지역 비밀결사 예농속회의 전국화를 모색한 윤영원 선생 등(건국포장)

충남 예산에서 비밀결사 예농속회를 조직해 민족의식 고취와 전국적 조직화를 도모한 윤영원 선생 등에게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예산공립농업학교 재학 중인 1939년 6월 비밀결사 예농속회를 조직하고 민족의식 고취와 전국화를 도모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일제 말기 왜곡된 식민교육 속에서 자생적으로 민족의식을 깨닫고 예산공립농업학교 출신과 예산교회 목사 김희운의 지도 아래 예농속회를 조직하였다. 조선민족정신 고취, 조선어 사용, 조선민족 단 결 등을 강령으로 하고 졸업 후 수원농회 기수로 근무하면서 예농속회의 전국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일제 말 민족말살과 황민화정책  속에서도 지역단위 비밀결사가 민족독립을 전망하면서 전국화를 도모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사적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 일제의 무차별적 살상에 희생된 독립군인 엄주철 선생(애국장)

중국 연길현에서 밀정 처단과 무기 구입 등의 활동을 한 엄주철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9년 6월 이후 중국 연길현에서 대한국민회 동부지방회 제4지회 경호구장 겸 서기로 밀정 처단과 무기 구입 등의 활동을 하다 ‘경신참변’ 때 순국하였다. 

‘경신참변’은 1920년 봉오동·청산리전투에서 패전한 일제가 같은 해 10월부터 4개월여 동안 일본군 2만여 명을 동원하여 한국인과 가옥에 대한 살인, 방화를 저지른 만행이었다. 1920년 12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무도한 적의 폭행에 생명과 집과 양식을 잃은 1백만 간도 동포”를 위로하며 대혈전(무장투쟁)으로 독립을 완성하자는 국무원 포고 제3호를 발표하였다.

1919년 3월 중국 북간도에서 조직된 대한국민회는 대표적 한인 자치를 위한 행정조직과 무장력을 갖춘 군사단체였다. 

♥ 경기 인천에서 도서를 오가며 군자금을 모집한 윤도중 선생(애국장)

경기 인천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와 연계해 군자금 모집과 연락 활동을 한 윤도중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23년 1월 경기 부천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 참사 윤응념과 군자금을 모집하고, 같은 해 3월 선박으로 인천 앞바다 도서 사이를 오가며 동지들을 이동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7년을 받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조직과 동시에 일제의 동향 파악과 국내와의 연락, 독립선전물 배포, 군자금 모집 등의 목적으로 교통부를 조직했다.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서울 등 내륙을 중심으로 설치된 교통국은 1921년 말경에 이르면 일본 경찰의 촘촘한 감시망에 탐지되어 거의 와해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윤도중 선생의 활동을 통해 1923년까지 교통부가 국내에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모집한 군자금으로 선박을 구입해 섬 사이를 오가며 활동했다.

이는 국내와 중국 산동반도나 상해 사이를 선박으로 직접 연결하려는 전망을 가지고 있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 해운국의 실제적 활동사례로 볼 수 있다. 

♥ 일제의 강제병합에 온몸으로 항쟁한 ‘열사’ 정두흠 선생(애국장)

전남 장흥에서 일제의 강제병합 소식을 듣고 자결로 순국한 정두흠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0년 음력 10월 전남 장흥에서 국권상실 소식을 듣고 “내가 무슨 면목으로 저 하늘의 해와 달을 대할 것인가. 살아서 설 곳이 없으니 죽어서야 돌아갈 땅이 있겠구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 순국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의 울분으로 조병세, 민영환, 홍만식 선생 등이 자결 순국한 뒤를 이어 경술국치를 당해 자결한 정재건, 장태수 선생과 더불어 호남지역 3대 순절자 중 한 분으로 불리고 있다. 

선생은 성패에 관계없이 목숨을 걸고 적에 대한 거사를 결행한 ‘의사’는 아니지만, 강력한 항의의 뜻을 자결 또는 그에 준하는 행동으로써 자신의 굳은 의지를 내보인 ‘열사’에 속한다.   

정부 포상자 명단(303명)

본 기사는 국가보훈처의 보도자료를 전재하여 제공함을 알려드립니다.

최해영 기자 news@wedding21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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