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잔소리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돌아온다. 지난 2년간 코로나 시국 때문에 침체했던 터라 규제가 완화된 올해는 활기를 띨 전망이다.

많은 인원수의 친인척 모임도 무리 없다. 물론 아직 바이러스가 종식된 건 아니므로 개인 방역에는 철저히 임해야 한다. 특히 가장 비상이 걸린 건 ‘마음’ 쪽이다.

그나마 코로나로 친인척들의 잔소리를 피했나 싶었는데, 2년간 적립해놓은 잔소리 폭격의 맹공을 생각하니 벌써 아찔하다. 바이러스 방역과 더불어 철저한 마음의 방역이 급박하게 필요해졌다. 

작년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조사에 따르면 “추석 때 따로 사는 가족·친척 만남 계획 ‘있다’”의 답변은 2016년 80%, 2020년 38%, 2021년 47% 순으로 2020년부터 절반 이하로 내림세를 기록했다.
 

사진 : 웨딩21DB
사진 : 웨딩21DB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현대인들은 명절을 또 하나의 휴가로 활용하고 있다.

가족, 친지들과 만나기보다 개인 여행을 떠나거나, 함께 사는 식구들끼리 혹은 홀로 조용히 집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거리두기로 인해 ‘명절 스트레스’가 줄었다는 이야기도 쏟아져 나온다. 이는 명절 스트레스의 원인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가족과 친지들의 지나친 관심과 잔소리’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 다른 설문 결과도 눈길을 끈다. 지난 2월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미혼남녀 24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명절 설문 조사에 따르면, ‘명절이 마냥 즐겁지 않은 이유’로 친인척의 연봉 등 직장 관련 질문을 받는 것이 45.3%로 1위를 차지했다.

연이어 결혼과 연애 관련 질문이 31.7%로 2위를 차지했다. 명절 증후군, 혹은 명절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은 바로 친인척들의 거리감 없는 무례한 질문들이었다. 

팬데믹 이전 명절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명절 전날부터 음식을 하기 위해 모두가 한곳에 모여든다. 멀리 떨어져 살며 안부를 주고받기 힘들었던 친척들도 만나게 된다.

반가운 인사는 잠시, 눈 깜짝할 새 “요즘 뭐 하고 사니?”라는 거리감 없는 질문이 훅! 들어온다. 그리고 잔소리인지 안부인지 모르게 이어지는 말들은 반가움을 더 나누고 싶지만 묘하게 다시 거리감을 두고 싶은 내용 일색이다.

어쩐지 일할 때보다 더 피곤해지는 느낌. 모두가 이런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친척들에게 둘러싸여 청문회처럼 질문에 대답하던 시절. 지난 2년간 ‘거리두기 제한’ 때문에 잊고 살았던 모습인데, 스트레스는 ‘명절’의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람이 싫으냐?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사람도 좋은 사람일 때가 있고, 그 사람도 어찌 됐든 내 친척 일가일 테니. 그럼 무엇이 문제냐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문제다.

사람의 혀는 가장 간악한 무기이며, 누군가를 상처 주기에 가장 효율적인 흉기이다. 심리적 거리감은 고려하지 않은 말들은 툭툭 직구로 날아와 가슴에 비수로 박혀버린다. 심지어 그 내용마저 다양하다.

미혼인 사람에겐 결혼을, 기혼자에겐 출산과 육아를, 수험생에겐 성적을, 직장인에겐 연봉을, 여성에겐 외모를, 남성에겐 재산을 취조한다. 각종 호구조사가 차별의 신호탄이 되는 줄도 모른 채. 그렇게 날아드는 말들은 명절이 끝나도 ‘명절 스트레스’로 오랫동안 후유증을 남긴다.

더 이상 엄마와 아빠의 친척 관계를 위해서, 화목한 명절을 위해서, 착한 딸·아들 코스프레를 위해 참는 시대는 지났다. 골 때리는 무례한 잔소리도 이제 그만. 지나친 호구조사와 차별적인 언어들은 점점 ‘금지어’가 되고 지적받는 시대가 됐다.

시대적 변화를, 달라진 성 인지성을 어른들께 알려주는 것도 이 시대 또 하나의 효도일 수 있다.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솔직한 MZ세대답게, 명절에 듣고 싶지 않은 ‘금지어’에도 현명하게 대처해보자.

예의에 어긋나지 않고 재치 있게 대처하는 <웨딩21>의 ‘팁(Tip)’을 참고해서!

뼈 때리는 대답

#결혼은 언제쯤? (feat. 애는 언제쯤?)

미혼자들이 가장 기피하고 스트레스받는 질문 중 부동의 1순위. 바로 결혼이다. 해당 질문은 미혼자가 결혼할 때까지 주변을 떠돈다.

결혼 안 하고도 잘 사는 세상인데, 그리고 지극히 개인사인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내 결혼을 궁금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안 한다고 하면 왜 안 하냐고 난리고,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하면 그 과정까지 참견하려 든다. 사실상 “결혼은 언제쯤?”은 질문 릴레이의 시작일 뿐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명확히 선을 긋는 게 낫다. 토론할 여지를 주지 말고, 대화를 차단해버리는 방법으로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맥 빠지는 농담’이 제격이다.

가령, “다음 주 목요일쯤? 시간 나면 할게요”라든지, “결혼하게 용돈 좀 주세요” 같은 대답들 말이다. 이런 정제되지 않은 너스레는 결국 어른들의 웃음을 자아내며 집안 분위기마저 훈훈하게 달굴 것이다.

#살 좀 빼야겠다, 혹은 쪄야겠다

‘외모 지적’에 대한 차별적인 문제와 심각성을 모르는 어른이 아직도 남아있다. 칭찬이라며 눈에 보이는 대로 이야기하고, 조언이라며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이러한 어른을 위해 MZ가 나서줘야 한다. 누구보다 ‘외모 지적’에 대한 불편함과 민감도를 잘 알고 있는 세대로서! 그러니 MZ들이여,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척이 외모에 대해 지적해오면 똑똑히 말해주길. “그런 말, 차별인 거 아시죠?”

#끝없는 ‘라떼’ 타령

매년 명절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야기보따리’형 어른은 집안에 꼭 한 명 이상 존재한다. 그들의 서두는 늘 같다.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 과거 영광의 이야기로 끝나기만 하면 좋으련만, 꼭 지나친 참견과 잔소리로 마무리 짓는다. 예를 들어, “라떼는, 네 나이에 처자식을 먹여 살렸어~!”나, “라떼는, 네 나이에 애를 둘이나 낳고 길렀어~!”처럼 말이다.

그럼 그제야 깨닫게 된다. 아, ‘라떼’ 타령은 나에게 잔소리를 퍼붓기 위함이었구나. 오로지 효과적인 잔소리를 위해 과거에 얽매여 있는 어른들. 이들에겐 지금의 현실이 21세기라는 것을 인지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MZ로서, 과거에 매몰된 어른들을 구출해낼 의무가 있으니까. 올 추석에 누군가 ‘라떼’ 시동을 건다면, 나지막이 속삭여 보자. “지금은 고조선이 아니에요.”

#연봉은 얼마나 받니?

보통 회사의 연봉 계약서에는 ‘합의된 연봉을 어떤 목적으로든 타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항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친척들은 매년 나의 연봉을 궁금해한다. 평범한 질문인 척 불시에 던져 계약서의 기밀을 누설하게 만든다. 자칫 회사와의 계약을 어길 뻔하기도 일쑤.

어떤 때는 당사자보다 더 회사 비전에 관심이 많고, 괜히 나서서 또래 친척들과 회사 레벨을 비교해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 어른은 연봉이 비밀이자 프라이버시라는 걸 모르는 듯하다. 아니면, 연봉쯤은 쿨하게 공개하는 ‘오픈 마인드’이거나. 어른의 의도가 후자라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눠볼 만하다.

올 추석 연봉을 묻는 말이 등장한다면, 쿨한 ‘어른’ 대 어른으로 당당하게 한 마디 던져보자. 

“그래서 고모부는 연봉이 얼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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