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는 열정의 소중함을 아는 포토그래퍼. 지니어스스튜디오 김진호 대표

 
 
자연스러우면서 피사체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나고, 표정에는 감정이 함뿍 담긴 포트레이트. 김진호 대표는 그런 사진을 꿈꾸는 사람이다.
 
앨범 샘플과 똑같이 붕어빵 찍어내듯 대량 생산을 하는 게 이제는 당연해져버린 웨딩스튜디오가 범람하는 이때에, 샘플과 다른 그 사람만의 사진을 찍고 느낌이 올 때마다 뚝딱거리며 직접 배경을 만들어보고 새로운 사진을 찍는 게 행복한 포토그래퍼.
 
이제는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알겠다고 말하는,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카메라를 잡고 뛰었던 그런 사람이다.
 
디지털의 발달로 인해 한 사람당 1.5대의 카메라를 가진다는 시대다. 전문가보다 일반인의 장비가 더 좋은 경우도 많고, 전문 포토그래퍼도 깜짝 놀랄 만큼 사진을 잘 찍는 사람도 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건 아무래도 포트레이트 사진이다.

피사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보여주고자 하는지를 담아내는 포트레이트는 피사체의 느낌을 잘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화려한 장비나 세트가 차지하는 몫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포트레이트는 포토그래퍼의 역량이 더욱 잘 드러나는 분야다.
 
아무리 친하고 잘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기는 어렵다. 전문모델이나 배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일반인은 오죽할까. 그래서 피사체와의 교감을 통해 감정을 이끌어내고, 감정의 찰나를 읽어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오로지 경험에서 우러나올 수밖에 없다.
 
김진호 대표가 사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다.

당시는 산업 육성정책으로 실업계 공고가 최고로 꼽히던 때라 한양공고에 입학했는데 학생들이 배워야 할 지식이나 교양을 가르치기보다 기능사로 육성하기 위한 수업이 반 이상이었던 학교 생활은 그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 어느 날, 학교에 늘 드럼 스틱을 가지고 다니던 괴짜 친구가 그를 찔렀다.
 
재미있는 곳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가게 된 곳이 5평 남짓한 작은 사진 부실. 그때 선배가 신기한 것을 보여주겠노라며 흑백필름을 인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흰 종이를 용액에 담그자 마법처럼 상이 올라왔다. 그 순간 그는 소름이 끼쳤다고 회상한다.
 
지금도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그 기억 때문에 지금껏 카메라를 놓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깊이 각인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사진에 그는 열정적으로 심취했다. 을지로 화공 약품집에서 직접 약품 재료를 사 엠큐니픽서니 조제를 해 사용할 정도로 사진의 기본부터 심도 있는 작업까지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
 
대학도 신구대 사진과를 졸업했고, 그 뒤 충무로 광고 스튜디오에 입사해 광고사진의 최고봉이라는 자동차 사진까지 경험했다.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신 차가 나올 때마다 일주일에 3~5일은 밤을 새웠고,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발로 뛰며 해결하려 노력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스튜디오 입사 후 남들은 1년이 걸려서야 잡을 수 있다는 카메라를 6개월 만에 잡을 수 있었다. 치열하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너무나 지친 자신을 발견했고, 조금 쉬어가기로 결심했다. 다른 분야의 사진 찍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가게 된 곳이 계몽사.
 

출판사 스튜디오는 책에 쓰는 소컷을 내부 촬영으로 간단하게 찍는 작업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일은 편했다. 그 사이 결혼도 하면서 안정을 찾았지만 좋았던 것은 딱 6개월 뿐. 틀에 박힌 작업에 싫증이 느껴졌고 몸이 근질거렸다. 결국 《컬러 학습대백과》를 편찬하는 프로젝트에 지원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포토그래퍼 12명이 1년 반 동안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각종 식물과 동물 등을 찍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그때 그가 맡은 분야 중 고산 식물파트가 있었는데,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언제 어디서 핀다는 기록만 보고 무작정 찾아 산을 오르고 다녔다고.
 
설악산에서 솜다리(에델바이스)를 찍다 지갑이니 자동차 키니 다 잃어버리고 지역 주민에게 사정해서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던 에피소드 등 고생스런 일들도 많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그를 즐겁게 한다.
 
그는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광고 사진의 정점을 찍다 출판 쪽으로 갔을 때도, 그리고 잡지 데스크까지 올랐다가 포트레이트를 배우려고 아래에서부터 다시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도 무언가 시도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후 중앙일보 출판사진부를 거쳐 각종 잡지와 무크지 일을 하며 잡지와 사보 경력을 쌓았고 워커힐 호텔의 <마제스티> 데스크를 맡아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편에는 늘 포트레이트 사진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국내 최고의 포트레이트 스튜디오인 란스튜디오가 자유로에 세트 촬영장을 오픈하면서 기존 웨딩 사진이 아닌 신선한 감각으로 사진을 찍을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같이 일하던 실장에게 “나 좀 배우고 올게.” 한마디를 남겨두고 란스튜디오를 찾아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오랫동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의 경험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꼈다.

피사체의 내면 모습과 느낌을 눈에 보이게 찍는 것은 오로지 경험으로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게된 것.
 
 
그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있다. 지금은 80세가 넘은 노모의 결혼 사진이다. 6·25를 갓 지났을 때인데 별다른 배경 없이 멍석을 깔아놓고 양복과 드레스를 빌려입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 있는 장면이다.

그때의 어머니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정말 사랑하고 싶은 분이었다는 걸 느끼며 그는 사진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서 어머니의 삶이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어머니의 사진에서 제 모습을 보고 있는 것처럼요. 이것이 사진이 가진 매력이에요. 그때의 감정과 그 기록을 다음 세대가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사진은 할 만한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사진을 보며 제 아들이 똑같이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사진을 하고 있죠.” 하지만 사진이 항상 그에게 행복감만 안겨준 건 아니다. 많은 아날로그 포토그래퍼들이 사진의 길을 포기하게 만든 디지털의 도입은 그에게도 큰 시련이었다.
 
아날로그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그는 도무지 디지털 사진에 적응할 수 없었다.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렸지만 결국 2년 만에 정리하고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이것만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생각으로 죽기살기로 마음먹었더니 6개월 만에 적응할 수 있었다고. 그런데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보니 스튜디오도, 장비도 가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구하는 자에게 길이 열린다고 했던가. 은인의 도움으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 지금의 지니어스 스튜디오다. 오픈 초기부터 발로 뛰는 아날로그 포토그래퍼답게 어느 스튜디오보다 많은 세트를 제작해 ‘다양한 콘셉트를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 결과 2년이 됐을 즈음 한 달에 100팀 이상을 촬영하는 곳이 되었다. 이제는 다양성보다 지니어스 스튜디오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흑백사진을 지니어스만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안셀애담스의 사진처럼 풍부한 계조로 흑백사진이 가진 깊이와 무게를 전달하고 싶다고.
 
김진호 대표는 지니어스 스튜디오가 천재들이 모인 곳이 아닌, 노력해서 천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오픈한 서울 강남구 관광센터에 지니어스 스튜디오가 들어가 있다.
 
지니어스 스튜디오의 사진이 ‘한류’라는 트렌드가 되어 외국에서도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기본에 충실하고 깊이 있는 사진을 봤을 때 느끼는 감동은 누구나 같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김진호 대표가 앞으로도 계속 진실한 사진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흑백 사진은 지니어스 스튜디오를 따라갈 수 없어.”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디지털이 줄 수 없는 아날로그의 감동을 재현하는 거죠. 깊이 있는 사진은 언제 봐도 감동을 주고, 다시 보고 싶어요. 그런 사진을 하고 싶습니다.

문의 02 3443 9801
 
에디터 김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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