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사정

결혼을 앞두고 옛 애인을 찾아가는 그들의 속내가 뭘까? 그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엿보았다.


STORY ABOUT HIM



남자들은 ‘헤어진 여자를 찾는 건 단지 그녀의 몸이 그리운 것뿐이야.’라고 흔한 유행가처럼 말한다. 방금 들이킨 소주 한 잔이 써서 그런 듯, 쓴웃음을 지으면서. 스무 살 시절을 말하는 거라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고 말하고 싶다.

대부분 서른이 넘어 결혼을 하는 요즘, 연애도 섹스도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남자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외로움에 전 여자 친구의 번호를 기억에서 떠올리는 건 철없을 때로 족하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앞둔 남자가 옛 애인을 찾는 건 더욱 희귀하다.

결혼 전 다른 여자와의 잠자리를 원한다면 깔끔하게 아무 여자나 만나면 되는 일이다. ‘가장 예쁜 여자는 오늘 처음 본 여자’라는 우스갯소리처럼 남자가 끌리는 건 낯설고 두근거림이 있는 여자이지, 굳이 과거의 미화된 기억에서 다시 끄집어낸 그녀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녀 역시 그때처럼 싱그럽지도 않을 거다.



A는 화려한 여성편력을 가졌다. 그는 옛 애인 중 단 한 명의 이름만 기억한다. 그녀가 첫사랑이기 때문이라는 낭만적 이유도 아니다. 스스로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잠자리를 한 다른 여자들의 이름은 이상하리마니 기억하지 못한다.

A는 결혼하기 전, 이름을 기억하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헤어진 연인이 잘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형편없어지는 것도 바라진 않을 것이다. 꽤나 오랜 시간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는 그녀의 말에 A는 조금 마음이 떨렸다.

그렇게 후회로, 아침을 함께 맞이했다. 그리고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는 건 영화 ‘멋진 하루’처럼 멋지지만은 않은 일임을 알아버렸다.



B는, ‘헤어진 여자가 찾아온 적은 있어도, 내가 보러 간 적은 없다’며 A를 비웃었다. 그러면서 술자리에서나 언급할 ‘필모그래피’ 정도의 감성이라고 일갈했다.

‘여자는 선택한 남자가 맞는 건지 확인하고 싶은 거고, 남자는 이 결혼을 하는 게 맞나 싶은 거다’라는 B의 말에 술자리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 전이라는 시간은 남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한 소설가는 결혼은 달에서 뛰어놀던 남자가 지구로 떨어져, 지구의 중력으로 살아가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신혼여행이 ‘허니문’이라고. 꿀 빨던(?) 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는 건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남자는 사랑하는 이를 아내로 맞이하는 일을 좀 더 거대하고 큰 인생의 관문으로 느끼는지 모른다.



사랑은 언제나 1인칭이다. 기억 속에서 사랑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미화되고 해석된다.

소심한 C는 결혼 전 옛 연인을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SNS를 멍하니 며칠 동안 찾아봤다. 그 시절에 듣던 노래를 들으며 추억을 되새겼다. 컴퓨터에 저장한 옛날 사진을 하나씩 휴지통으로 옮기고, 그 휴지통을 열어 영구삭제를 감행했다.

혹여 아내가 될 여자가 볼 수도 있으니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하나둘 기억을 지운 것. ‘그 순간 그녀가 내 인생에서 완전히 지워지는 느낌이었어. 그전까지는 휴지통에 담겨져 있는 파일처럼 언제든 복원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삭제된 기분이었어.’

C는 담담하게 말했다. 모두 C를 놀렸지만, 비웃지는 않았다. 노래로는 들을 만했는데 막상 가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는 경우가 있다. ‘소주 한 잔’처럼 옛 연인에게 술에 취해 지르는 소리만큼 쓰디쓴 일도 없다.

우리는 그녀를 찾아가지 않은 용기에 그저 ‘잘했어’라는 말만 해주었다.

_최종인(매거진 에디터)




STORY ABOUT HER

살면서 정말 뜨겁게, 열심히 하는 것이 딱 두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연애다. 연애를 특기이자 취미로 꼽으며 살아왔지만 나는 아직 싱글이다.

왜냐고? 간단하다. ‘결혼’은 ‘연애’가 아니니까(결혼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어떻게 ‘결혼을 앞둔 여자들이 과거 연인에게 연락하는 심리’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직접경험은 없지만 간접경험의 장점은 직접경험에 비해 객관적일 수 있다.

보통, 연애심리에서 남자보다 여자가 더 복잡하고 세분화 되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혼을 앞두고 과거 연인에게 연락하는 심리도 마찬가지. 여자 열 명이 있다면 열 개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여기 몇 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A는 꽤 반듯한 삶을 살아왔다. 모범생으로 통했지만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는 따분한 스타일은 아니어서 놀 땐 놀고, 연애도 적당히 해본 그녀.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에 결혼을 했는데, 야무진 그녀가 고른 상대는 ‘신랑감의 모범답안’ 같은 남자였다. 그러니까,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다니는 가정적 성향의 남자. 사실 그녀는 예비 신랑과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결혼은 ‘현실’이란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달달함과는 거리가 먼 삶 속으로 뛰어들기 전, 그녀는 가장 뜨거운 연애를 했던 상대에게 연락해 마지막 로맨스를 즐겼다. 결혼을 앞두었으므로 그날의 만남은 슬픈 멜로로 마무리 됐는데, 남편과의 안정적이지만 두근거림 없는 결혼생활에 지칠 때면 그녀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면서.



B는 아주 굴욕적으로 차인 경험이 있다. 사귀던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서 차인 것까지는 그렇다 치는데, 울며불며 매달리기까지 한 것이 불태워버리고 싶은 기억이었다. 몇 년 뒤, 결혼을 앞두고 그녀가 옛 애인에게 연락한 이유는 오로지 그 기억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나 이렇게 괜찮은 남자랑 결혼해!”

이 밖에도 결혼할 남자가 전 여자 친구에게 연락했다는 사실을 알고 복수심에 ‘맞’ 연락질을 한 경우, 아련한 추억 속 연인과 나만의 ‘진짜 마지막’ 작별의식을 치르기 위한 경우, 미련이 남은 경우 등등 이유는 제각각이다.

복잡한 여자들답게 한 사람이 서너 가지 이유를 대기도 했다. 그럼에도 꽤 여러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온 이유는, ‘내 결정이 옳은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이 사실을 잘 안다. 완벽한 선택이 없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런 상황에서 최선은 후회의 양을 최소화하는 것.

옳은 결정이란 애초에 불가능하지만 최선의 결정인지는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남은 생을 함께 보낼 단 한 사람을 결정하는 일인데 왜 안 그렇겠는가.만일 내가 결혼을 한다면 지난 사랑 중 누구의 얼굴을 떠올릴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거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남자친구, 남자친구의 친구와 셋이 술을 마셨는데, 남자친구의 친구를 위로하는 자리였다. 그의 옛 연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 술에 취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걔는, 내가 돌아오라고 하면 다 버리고 돌아올 텐데…….” 결혼을 앞둔 옛 연인이 자기의 말 한마디면 파혼하고 돌아올 거라는 (허세에서 비롯된) 확신을 갖고 사는 남자들, 의외로 많다. 정말 많다. 상대방에게 그런 엄청난 착각을 마지막 선물로 남겨주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연락하지 마시라.

나의 결혼을 그에게 꼭 알리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그럴 땐 간접적으로, 좀 더 지능적으로 ‘알게 하는’ 방법을 택하시라. 페이스북은 인생의 낭비나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남자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결혼을 앞둔 그녀의 연락에 큰 의미를 두지 마시라. 당신이 연락하는 이유 또한 ‘뭘 어쩌기 위함’이 아니라는 건 잘 알지 않는가)

옛 애인에게 연락하는 대신 자신의 결정을 믿으시길.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마지막 단계일 테니까. _조수경(소설가)


에디터 김민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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