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Bata) 제국'으로 불리던 체코의 현대 도시
'바타(Bata) 제국'으로 불리던 체코의 현대 도시
  • 황현선
  • 승인 2021.04.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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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린. 이하 Eastern Moravia 제공

체코에는 프라하, 체스키크룸로프, 브르노 등 낭만의 향기가 풍기는 중세도시도 있지만, 예상 외로 단순하고 기능적인 현대 건축이 돋보이는 도시도 있다. 바로 '바타 제국'으로 불리는 '즐린'이 그곳이다. 130여 년 전만 해도 인구 3000명에 불과했던 작은 소도시었던 즐린은 현재 체코 동부 지역의 중심지다. 그 배경엔 수식어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신발 브랜드 바타(Bata)와 창시자인 토마시 바짜(Tomáš Baťa)가 있다.

체코관광청은 올해 토마시 바짜 탄생 145주년을 맞아, 랜선 여행객들에 신선하게 다가올 도시 즐린과 바짜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즐린에 있는 토마시 바짜 동상

◊ 토마시 바짜의 삶과 죽음, 그리고 발자취

1876년 대대로 구두를 제조하는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토마시 바짜는 어렸을 때부터 가죽이나 신발에 관심이 많았고 열정적이며 솜씨도 좋았다. 그는 훌륭한 장인이자 자신의 기업을 일구겠다는 일념 하나로 평생 한 번도 담배나 술을 즐기지 않으며 오로지 자기 일에만 정성을 쏟았다.

가난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낙담하지않았던 그는 1932년 불의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된다. 이후 그의 아들과 손자들은 체코 출신인 불멸의 명장 토마시 바짜의 발자취를 따라 재단을 설립해 즐린에 토마스 바타 대학교(Thomas Bata University)를 세우고 재산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등 사회적 기여와 함께 지금껏 글로벌 제화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지켜나가고 있다.

즐린의 초고층 건물

◊ 강철, 유리, 벽돌과 철근 콘크리트의 기능주의 도시 즐린

신발 하나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사업가 토마시 바짜는 드르제브니체(Dřevnice) 강변 작은 도시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바타 신발 공장은 수천 명의 노동자를 고용했고, 이들이 즐린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회사는 직원들에 좋은 숙소와 학교, 대형병원, 스포츠센터 및 영화관 등 문화시설을 제공하며 도시 인구는 급증하게 된다.

즐린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벽돌을 쌓아 올린 외관 그리고 금속 프레임의 창,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기계처럼 경제적 합리적이며 기능적 건축 구조의 도시로 변모한다. 1,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중요한 경제 중심지 중 하나이자 '유럽의 기능주의 도시'의 원형 중 하나로 꼽힐 정도였다.

도시 건설의 모티브는 시민들이 자연과 함께하는 청정 도시 인프라 속 편안한 가정을 꾸리고 쾌적하고 질서정연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의 뒤편에는 직원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생산성을 유지하려는 열망이 있었다.

'바타 제국'의 상징은 즐린의 초고층 건물로, 건설은 토마시 바짜의 사망 후 토마시 바짜의 이복형인 얀 안토닌 바짜(Jan Antonín Baťa)가 지시했으며 완공 당시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됐고 지금도 그의 사무실을 방문해볼 수 있다.

바짜는 시대를 앞서나간 혁신적인 인물이었다. 직원들과 보다 쉽게 의사소통을 하고 다른 층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사무실을 두었다는 일화에서 그의 선진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나무로 만든 바타의 신발

◊ 유럽·미국을 자극한 바타 제국

"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과 바짜(Baťa)다."

1989년 프랑스에서 선보인 이 광고 캠페인은 광고 특유의 위트를 제외하면 사실에 가깝다.

올해 127주년을 맞이하는 바타는 전 세계 70여 개국에 53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일 100만명 이상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바타의 역사는 1894년 9월 시작했다. 토마시, 안토닌(Antoní), 안나(Anna) 등 세 남매는 자신들의 최초 신발 공장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던 모라비아 지방 즐린(Zlín)에 세웠다.

공장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군화를 공급하면서 급격히 성장했다. 직원이 거의 4000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인 불황이 찾아오며 바타도 위기를 맞았다. 소규모 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하는 동안 바타는 기어코 살아남았지만 급격한 판매 감소에 생산량을 줄여야 했다.

1922년 9월, 토마시 바짜는 신발 가격을 반으로 인하하는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의 예상은 적중하며 순식간에 수많은 고객층을 확보하며 전체 신발시장을 장악했다.

신발 산업 및 마케팅 분야에 선두주자가 되며 체코슬로바키아의 제1의 수출업체로 떠올랐다. 즐린에 있는 그의 공장은 화려한 발전을 꽃피웠고, 1923~1938년 현대적인 건물과 시설로 구성된 광범위한 복합단지가 마을 외곽에 지어졌다.

토마스 바짜는 생산성 향상 및 기업인과 직원들의 이해관계 융합을 도모하는데 미국의 마케팅 기법에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포드 사의 '벨트 컨베이어' 이동식 조립라인이라는 기술 혁신을 도입해 생산방식을 현대화 시켰고 비용을 절감했다.

또한 직원들이 생산에 관심을 갖고 더 나은 작업 환경에서 기업 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익 공유'라는 재정적 동기를 부여하며 작업 방식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다. 이는 오늘날의 인센티브나 스톡 옵션과 유사한 경영기법이다.

토마시 바짜는 가격 책정 등 비즈니스적 측면에서도 뛰어났다. 그는 신발의 금액을 정수인 0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9로 끝나는 숫자로 책정했다.

예를 들어 가격이 1000이 아니라 999라고 하면 지갑이 더 잘 열릴거리는 사실을 영리하게 활용했고 21세기인 지금도 이런 가격 책정 방식은 전 세계에 널리 적용되고 있다.

사업이 빠르게 확장되며 몇 년 이내 많은 국가에서 자회사들이 문을 열었다. '바타 도시'는 1931년 영국 이스트 틸버리(East Tilbury), 프랑스 로렌(Lorraine) 등 유럽 곳곳에 세워졌다.

바타 도시와 세계 각처에 위치한 자매 도시들 역시 즐린 공장의 표준 모델에 따라 건설됐다. 이들 도시에는 "바타에서 살고, 먹고, 일하고, 잠자고, 꿈꾼다"는 토마스 바짜의 특별한 기업가 정신이 녹아있다.

바타에서 일했던 임직원들은 모두 '바짜맨'(Baťamen)이라 불렸다. 그들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박, 상점, 학교, 병원 등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다.

바짜는 1932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기 얼마 전 인도에서 돌아온 후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여러분, 미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맨발로 다니고 있고 겨우 5%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신발을 신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아직 거의 일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고, 모든 제화공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입니다!"

바짜 기념관

◊ 전쟁과 바타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바타 제국은 또 한번의 위기를 맞게된다. 전체주의 정권의 타격을 받게 된 것. 전쟁이 끝날 때까지 창업자 토마시 바짜의 아들 토마시 얀 바짜(Tomáš Jan Baťa)는 캐나다로 파견돼 그곳에 바타 제국을 건설하고 캐나다의 바타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전쟁기간 회사는 독일 나치의 징발 대상이 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권을 잡은 공산주의자들은 바타 공장을 국유화했다. 이에 얀 바짜는 사업을 재편하고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미와 같은 새로운 시장으로 확장했다.

바짜가 탄생한 즐린은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지도자이자 대통령이었던 클레멘트 고트발트(Klement Gottwald)의 이름을 딴 고트발도프(Gottwaldov)란 지명으로 바뀌었다가 약 40년 후,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몰락한 이후 1990년 1월1일 자로 다시 즐린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이때 토마시 얀 바짜도 고국 체코에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돌아올 수 있었다.

1990년대 글로벌 경제 변화 이후 회사는 해외의 여러 공장을 폐쇄했지만 바타는 역사상 140억 켤레의 신발을 판매한 역대 최대 신발 제조 업체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바타는 현재 캐나다에서 본사를 스위스로 이전했으며, 20세기 건축과 독특한 바타형 도시 건축을 특징으로 하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의 도시 즐린에서는 바타의 이름을 딴 재단 및 대학을 설립하는 등 브랜드와 기업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황현선기자 news@wedding21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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